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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인문/사회/종교]

한국 민주화의 도화선이 된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이 사건을 특종 보도한 신성호가 1987년 숨 가빴던 1년을 재구성한 책!  

 

“박종철 사건 보도가 없었다면 이 사건은 5공 시절의 의문사 가운데 하나로 남았을지도 모른다. 역사의 흐름으로 보면 민주화는 결국 이루어졌을 것이다. 하지만 박종철 사건이 한국의 민주화를 최소한 몇 년은 앞당겼다고 본다.” 이 책의 저자 신성호는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박종철 사건이 민주화 과정에서 미친 영향’에 대한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1987년 1월 14일 일어난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은 당시 중앙일보 사회부 기자였던 신성호에 의해 처음 세상에 알려졌고, 이는 곧 대한민국 민주화 역사의 정점이었던 6월 항쟁의 도화선이 되었다. 한국의 민주화를 논할 때 박종철 사건을 빼놓을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 책은 박종철 30주기를 맞아 이 사건을 최초로 세상에 알린 전 중앙일보 기자 신성호가 당시 목격한 사건의 진실, 언론 탄압에 맞선 그의 첫 보도가 전 언론에 미친 영향, 이후 6·10항쟁을 거쳐 6·29선언을 이끌어내기까지의 전 과정을 오늘날의 관점에서 재해석한 책이다.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이 일어난 지 30년이 지난 지금, 이 책은 대한민국 민주화의 시작점이란 평가를 받고 있는 박종철 사건과 민주화 역사상 가장 치열했던 1987년을 되돌아봄으로써 한국 언론의 방향성을 되짚어보는 것은 물론, 청년 박종철이 죽음으로써 찾고자 했던 대한민국의 모습이 무엇인지 숙고해보는 계기가 될 것이다.  

 

본문 미리보기

 

만약 1987년 노태우 민정당 대표가 종전의 간선제로 대통령에 당선됐더라도 시대적 흐름, 커져가는 시민의식 등으로 민주화는 필연적으로 이뤄졌을 것이다. 6월 항쟁은 민주화라는 결과물만이 아니라 그것을 이뤄 낸 과정에서 시민들이 하나가 됐다는 데도 그 의의가 있다. 즉 정치권이 주도한 위로부터의 민주화가 아니라 시민 중심의 아래로부터의 민주화라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고 할 수 있겠다. 따라서 박종철이라는 이름은 이러한 시민 중심 민주화운동의 시작점이었던 것이다.

- p15, 1987년을 기억하며

 

“경찰, 큰일 났어.”

6년째 법조를 출입하고 있던 나는 이홍규 과장의 말에서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졌음을 직감했다. 그러나 어설프게 덤벼들었다가는 일을 그르칠 수도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검찰 간부들은 비교적 보안 의식이 철저하기 때문에 그들이 쉽게 말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유도하는 것이 중요했다. 그래서 나는 이미 알고 있는 사건이라는 듯이 맞장구를 쳤다.

“그러게 말입니다. 요즘 경찰들 너무 기세등등했어요.”

“그 친구 대학생이라지. 서울대생이라며?”

그의 말은 청천벽력과도 같았다. 이건 서울대생이 경찰에서 조사를 받다가 사고를 당했다는 말이 아닌가.

- p25, 박종철 사건 보도, 그 숨 가빴던 24시간의 기록 

 

당시 나는 내심 큰 특종을 했다고 생각했고, 1면은 아니어도 최소한 사회면 중간톱 정도는 될 것이라 기대했다. 하지만 기사는 사회면 2단으로 실렸다. 무심코 지나칠 수 있는 그런 곳에 실린 것이다. 이런 내 마음을 알았는지 어느 선배는 “미국의 닉슨 대통령을 물러나게 한 워터게이트 사건도 1단짜리 보도에서 비롯됐어. 박종철 사건도 역사적인 특종이 될 거야”라며 나를 위로했다.

하지만 돌이켜 보면 중요한 것은 기사의 위치가 아니다. ‘박종철이 라는 젊은 학생이 죽임을 당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는 자체다. 진실된 기사는 위치에 상관없이 누군가의 눈에 띄어 회자된다. 나아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여 세상을 바꾸는 기폭제가 되기도 한다.

- p38, 박종철 사건 보도, 그 숨 가빴던 24시간의 기록  

 

정권 중반인 1985년 이후 전두환 정권의 강압 정치는 더욱 거세졌다. 1988년 정권 이양을 앞두고 군부의 장기집권에 걸림돌이 되는 민주화운동에 대한 탄압의 강도를 높였다. 민주화 세력을 탄압하기 위해 국가보안법을 동원했다. 경찰은 공안사건 수사에 한 계급 특진 등 포상을 내걸고 수사를 독려했다. 이런 분위기가 결국 물고문과 전기고문 등 강압 수사를 부채질한 것이다.

- p78, 대한민국 민주화는 박종철 사건 전후로 나뉜다 

 

박종철 사건이 없었거나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더라도 언젠가는 우리도 민주화를 이룰 수 있었을 것이다. 아무리 독재정권이라 하더라도 시대의 흐름과 국민의 열망을 끝까지 외면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두환 정권이 4·13 호헌 조치를 통해 제5공화국 헌법에 따라 선거인단에 의한 간선제로 임기 7년의 차기 대통령을 선출하려했음을 감안한다면 박종철 사건은 우리의 민주화를 적어도 몇 년은

앞당겼다고 볼 수 있다.

- pp85~86, 대한민국 민주화는 박종철 사건 전후로 나뉜다

 

1980년대 우리나라 언론은 국민의 여론을 전달하고 사회의 실상을 보도하는 역할을 올곧게 수행하지 못했다. 80년대 언론은 ‘땡전뉴스’ ‘권언유착’ ‘언론통제’ 등과 같이 부정적인 말로 대변된 다. ‘땡전뉴스’는 TV에서 저녁 9시를 알리는 ‘땡’ 소리가 울리자마자 “전두환 대통령은 오늘”이라는 말로 시작되는 대통령 관련 뉴스를 내보내던 것을 비꼰 말이다. 여기에는 당시 언론을 바라보는 국민의 시각이 그대로 담겨 있다. 

- p109, 언론, 민주화의 도화선에 불을 댕기다

 

중앙일보의 첫 보도 이후 경찰은 1월 15일 오후 6시쯤 공식 발표를 통해 박종철 군의 사망 사실을 시인했다. 이 발표에서 강민창 치안본부장은 기자들에게 고문 사실을 숨긴 채 사망 경위를 ‘심장마비’로 설명했다. 또한 이 자리에 배석했던 치안본부 5차장 박처원 치안감은 “책상을 ‘탁’ 하고 쳤더니 ‘억’ 하고 쓰러졌다”고 덧붙였다.

- p134,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는 없다

 

1987년 1월 15일 “경찰, 큰일 났어”라는 말 한마디는 박종철이라는 젊은이의 죽음을 세상에 알리는 단초가 됐다. 이 말은 또 1987년 6월 대한민국을 뒤흔든 ‘6월 항쟁’의 출발점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 말을 했던 이가 이홍규 당시 대검찰청 공안4과장이라는 사실은 필자가 2012년 박사학위 논문〈박종철 탐사보도와 한국의 민주화 정책변화〉를 통해 밝히기 전까지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다. (중략) 딥 스로트는 취재원과 취재기자의 신뢰관계가 없으면 성립되지 않는다. 이홍규 전 대검 공안4과장은 나에게 사건의 단서를 제공한 것과 관련해 “워낙 민감한 사건인지라 조심스러웠던 게 사실”이라며 “그러나 신성호 기자를 믿었다”고 말했다.

- pp.154~155, 진실을 밝히기 위해 움직인 사람들 

 

연행 학생들의 신병 처리 방향을 취재하기 위해 11월 1일 오전 서울지검 공안부에 들렀던 나는 한 검사의 말을 듣고 귀를 의심했다. 구속 대상이 몇 명쯤이냐는 나의 질문에 그가 “모두 다”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그의 설명은 이랬다. “연행자가 너무 많아 짧은 시간에 학생들의 의식화 정도와 구체적인 범행 사실을 가리기 어렵다. 학생 모두를 일단 구속한 뒤 기소 단계에서 선별하기로 했다.”

- p176, 학생운동에서 시민운동으로 - 사회 각계각층의 움직임 

 

6·29선언은 1987년 1월 박종철 군의 죽음을 시작으로 6월 범국민적 항쟁을 통해 이끌어낸 국민 승리의 결과였다. 민주화 이후엔 6·29선언의 진실을 둘러싸고 당시 전두환 대통령과 노태우 민정당 대표 측이 서로 자신의 업적이라며 다투기도 했다. 6·29선언을 통해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이뤄냈지만 야권의 분열로 정권 교체에 실패했다는 자조 섞인 비판도 있다. 하지만 6·29선언은 국민이 하나가 되어 얻은 소중한 결과물이라는 데는 이론이 없다.

- p211, 6·29선언이 우리에게 가져온 것들 

신성호

 

성균관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교수.

서울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성균관대학교 영어영문학과와 고려대학교 대학원(언론학박사)에서 공부했다. 대학 4학년이던 1980년 10월 중앙일보·동양방송 기자 시험에 합격했으나 다음 달 단행된 신군부의 언론통폐합 조치로 합격이 취소되는 아픔을 겪었다. 1981년 10월 공채 18기로 중앙일보에 입사했다. 이후 30년 동안 중앙일보 기자로 일하면서 사회부 법조 출입 기자(12년), 정치부 국회 출입 기자, 국제부장, 전국부장, 사회부장, 사회담당 부국장과 논설위원, 수석논설위원을 거쳐 계열사인 정보사업단 대표이사를 지냈다. 수석논설위원이던 2007년에는 고려대 초빙교수로 미디어학부에서 1년간 강의했다. 2011년 말 중앙일보를 퇴직한 뒤 2012년부터 서울대·고려대·연세대 등에서 강의했으며, 2014년 3월 성균관대 전임교수로 임용되어 언론 실무 관련 과목들을 강의하고 있다.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특종 보도로 1987년 한국기자협회가 주는 한국기자상을 수상했다. 법조언론인클럽 초대 회장과 법무부 변호사징계위원회 위원, 대검찰청 감찰위원회 위원,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법조인력양성제도개선 자문위원장, 방송통신심의위원회 명예훼손분쟁조정부의장, 법학전문대학원평가위원회 위원, 대통령비서실 홍보특별보좌관 등으로 활동했다. 

박사학위 논문으로 <박종철 탐사보도와 한국의 민주화 정책변화>를 썼으며《6월 항쟁을 기록하다》《한국을 뒤흔든 특종》의 집필에 참여했다.

추천사 민주주의 역사의 물줄기를 바꾼 ‘박종철’ 특종 

프롤로그 1987년을 기억하며

 

1장 박종철 사건 보도, 그 숨 가빴던 24시간의 기록

 

2장 한 젊은이의 죽음, 진실이 밝혀지기까지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급박했던 10일의 기록

고조된 민주화 열망

6월 항쟁의 시작, 박종철

박종철의 이름으로 성취한 국민의 승리

 

3장 대한민국 민주화는 박종철 사건 전후로 나뉜다 

1980년 서울의 봄, 다시 암흑 속으로 

국민의 귀를 막고 눈을 가리다 

가장 정확한 뉴스는 ‘대자보’와 ‘카더라 통신’2

인권 유린과 강압 정치

국민의 정치적 무관심을 유도하다 

왜 박종철인가 

 

4장 해외 사례로 본 박종철 사건의 의의

탐사보도로 역사를 만들다 - 미국 워터게이트 사건 

군부의 인권 탄압에 맞서다 - 프랑스 드레퓌스 사건 

한 청년의 죽음이 시민을 움직이다 - 튀니지 재스민 혁명

 

5장 언론, 민주화의 도화선에 불을 댕기다

제 기능을 상실한 언론 

박종철 사건, 언론이 진실을 알리다

사회면 기사에서 1면 톱기사가 되다 

정부의 강압에 맞서다 

언론, 6월을 이야기하다 

 

6장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는 없다 

한 젊은이의 죽음, 경찰이 은폐를 시도하다 

유족을 회유하고 시신 화장을 서두르다

사건 은폐에서 축소로 방향을 바꾸다 

검찰, 2월 말 범인 축소 알았다 

사건 축소 세상에 알려지다 

사건 후 1년, 부검의 일기 공개로 경찰 총수 구속되다 

경찰의 은폐·축소, 부메랑되어 돌아오다 

 

7장 진실을 밝히기 위해 움직인 사람들 

25년 만에 밝혀진 딥 스로트 이홍규

사체 화장 막은 공안부장 최환

물고문 의혹 제기한 의사 오연상 

물고문 혐의 처음으로 밝힌 정구영 서울지검장

박종철 1주기, 경찰의 회유·압박 공개한 부검의 황적준

 

8장 학생운동에서 시민운동으로 - 사회 각계각층의 움직임

직선제 개헌을 위한 움직임 

종교계가 움직이다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의 성명과 6월 항쟁

재야세력의 움직임 

학생운동에서 시민운동으로 

 

9장 뜨겁고 치열했던 1987년 6월

서서히 달궈진 6월의 이야기 

명동성당을 넘어 전국으로

경적운동부터 넥타이 부대까지 

시위 진압 위해 비상계엄령 검토했다 

보이지 않는 손, 해외의 민주화 압력 

 

10장 6·29선언이 우리에게 가져온 것들 

국민의 승리, 6·29선언 

6·29선언 이후의 이야기

6·29선언, 누구의 각본인가

 

에필로그 아직도 끝나지 않은 이야기, 박종철 

박종철과 1987년을 기억하다 

 

지금으로부터 30년 전인 1987년, 22세의 대학생 박종철이 경찰의 가혹행위로 죽음을 맞았다. 이 사건을 처음으로 세상에 알린 사람은 중앙일보 사회부 기자였던 신성호 현 성균관대 교수다.《특종 1987》은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과 6월 항쟁 과정에서 언론과 기자들이 어떤 역할을 했고, 어떤 과정을 거쳐 민주화가 이뤄졌는지를 당시 취재기자의 시각으로 소개한 책이다.

 

단순 사건 보도에서 탐사 보도로의 첫 전환

 -서슬 퍼런 권력에 맞서 언론의 제 모습을 찾다

전두환을 위시한 신군부가 집권했던 1980년대는 대한민국 민주화 역사상 가장 암울했던 시기로 일컬어진다. 대학가와 사회 각계각층에서 벌어진 민주화 운동을 탄압하는 과정에서 인권을 유린하는 것은 물론, 국민을 속이기 위해 언론 탄압 정책을 자행했다. 언론은 본래의 기능을 수행하지 못했고, 시민들 사이에선 “가장 정확한 뉴스는 ‘대자보’와 ‘카더라 통신’ 밖에 없다”는 말이 나돌았다.   

정권의 꼭두각시 노릇을 하던 언론이 제 기능을 찾게 된 계기가 바로 박종철 사건 보도였다. 신성호 기자의 첫 보도를 기점으로 각 언론은 사실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공권력의 고문에 의한 한 대학생의 죽음이라는 충격적인 사건 발생과 경찰 상급자들의 고문 경관 축소 조작 모의 등은 언론의 추적보도를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이는 6월 민주항쟁의 도화선이 되어 한국 민주화의 새 장을 여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당시 언론의 역할에 대해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는 《한국 민주주의의 조건과 전망》(1996)에서 “언론은 … 한국 현대 정치사의 결정적 계기에서 지대한 역할을 해 왔다. 이것은 언론의 비판적 기능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보여주는 예증이다. 1987년 6월 항쟁과 군부 권위주의의 해체를 가져오는 데도 역시 양심적이고 비판적인 언론의 역할은 커다란 기여를 하였다” 라고 평가했다.

1987년 민주화 과정에서 언론의 역할에 대한 평가는 엇갈리고 있다. 하지만 전두환 정권 말기였던 1987년 1월, 박종철 사건 보도는 적어도 한국의 민주화를 몇 년 앞당긴 것만은 자명한 사실이다. 또한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에 대한 신성호 기자의 첫 보도 후 언론은 탐사 보도로서의 제 역할을 수행하기 시작했다. 이를 통해 국민은 박종철 사건의 진상을 알게 되었고, 이는 곧 1987년 6월 항쟁의 기폭제가 된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박종철 사건과 1987년 한국 민주화 

1987년을 빼놓고는 한국 현대사를 이야기할 수 없다. 민주화의 한 획을 그은 6월 항쟁이 있었던 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같은 해 1월 14일 일어난 박종철 사건은 전두환 정권의 도덕성에 치명타를 가했고, 6월 항쟁의 도화선이 됨은 물론 결국 정권이 국민에게 무릎을 꿇은 6·29선언을 이끌어내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이뤄냈다. 

이 책은 사건을 첫 보도한 신성호 기자의 취재일지를 시작으로 마침내 6·29선언을 일궈내기까지의 과정을 생생하게 재구성하고 있다.  

1~2장에서는 당시 긴박했던 취재 현장과 전화로 기사를 송고하고 윤전기를 멈춰 세우면서까지 일궈낸 첫 보도, 그리고 그 여파로 전 언론사들이 어떻게 움직였는지를 다룬다. 3장에서는 이러한 박종철 사건이 대한민국 민주화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해 1980년대를 통틀어 설명하고 있다. 4장에서는 탐사보도로서의 언론사(言論史)적 의미, 인권 탄압에 맞선 기자 정신, 현대 사회에서의 언론이 나아가야 할 방향 등을 해외 사례와 견주어 설명한다. 이후 5장에서는 박종철 사건 보도 후 정권의 강압적 태도와 이에 맞선 언론과 시민들, 그리고 6월 항쟁이 이어지기까지의 과정을 소개한다. 6~7장에서는 경찰의 사건 은폐 조작과 마침내 관계자들이 구속되는 과정, 그리고 이를 위해 목숨을 걸고 진실을 밝혔던 당시 사건 관계자들의 모습을 다루고 있다. 또한 8~9장에서는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등 종교계를 비롯한 가회 각계각층의 움직임, 경적운동과 넥타이 부대 등 범시민운동으로 확산된 민주화 운동에 대해 자세히 다루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 10장에서는 마침내 일궈낸 6·29선언의 진실과 그 이후의 이야기에 대해 다루고 있다.

 

박종철 30주기, 우리에게 남은 과제 

저자는 이 책의 마지막 에필로그의 제목을 ‘아직도 끝나지 않은 이야기, 박종철’이라고 붙였다. 22세의 청년 박종철의 죽음이 한국 민주화의 불씨가 된 지 30년이 흘렀다. 그 30년 동안 한국은 대통령 직선제 개헌, 최초의 문민정부, OECD 가입, IMF 외환 위기 등 많은 일을 겪었다. 이제 민주화는 갈망의 대상이 아닌 너무나 당연한 일상이 됐다. 그에 따라 ‘박종철’이란 이름은 역사의 뒷 켠으로 물러난 채 서서히 잊혀져가고 있다. 그러나 저자는 우리 모두에게 묻는다. 

‘지금 우리는 청년 박종철이 꿈꾸던 세상에 살고 있는가?’

한국은 2차 세계대전 이후 독립한 나라들 가운데 유일하게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일궈냈지만, 내부를 들여다보면 여전히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 정치권은 진영과 계파로 나뉘어 국민의 신뢰를 잃은지 오래고, 북한의 잇따른 핵 개발은 기본적인 삶을 위협하고 있다. 소득수준이 월등히 높아졌다고는 해도 오늘날을 사는 젊은이들은 ‘수저 계급론’을 거론하며 지금 우리 사회가 공정하지 못하다고 생각한다. 

박종철 사건과 6월 항쟁이 30주년이 되는 지금, 우리는 지금 우리의 모습을 30년 전 과거의 거울에 비춰볼 필요가 있다. 저자는 다시 한 번 묻는다. 

‘우리 사회는 6월 항쟁 당시 시민들이 원하는 모습인가?’

저자의 말처럼 오늘 우리의 모습이 그들이 꿈꾸던 세상과 거리가 있다면 박종철 사건은 30년 전 끝난 것이 아니라 아직도 진행 중이라 할 수 있다. 이것이 우리가 박종철을 기억해야 하는 이유이며, 저자가 이 책을 출간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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