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 바로가기
검색 바로가기
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중앙북스 사이트맵 바로가기

카테고리 [인문/사회/종교]

“박종철 사건 보도가 없었다면 이 사건은 5공 시절의 의문사 가운데 하나로 남았을지도 모른다. 역사의 흐름으로 보면 민주화는 결국 이루어졌을 것이다. 하지만 박종철 사건이 한국의 민주화를 최소한 몇 년은 앞당겼다고 본다.” 이 책의 저자 신성호는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박종철 사건이 민주화 과정에서 미친 영향’에 대한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1987년 1월 14일 일어난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은 당시 중앙일보 사회부 기자였던 신성호에 의해 처음 세상에 알려졌고, 이는 곧 대한민국 민주화 역사의 정점이었던 6월 항쟁의 도화선이 되었다. 한국의 민주화를 논할 때 박종철 사건을 빼놓을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 책은 박종철 30주기를 맞아 이 사건을 최초로 세상에 알린 전 중앙일보 기자 신성호가 당시 목격한 사건의 진실, 언론 탄압에 맞선 그의 첫 보도가 전 언론에 미친 영향, 이후 6?10항쟁을 거쳐 6?29선언을 이끌어내기까지의 전 과정을 오늘날의 관점에서 재해석한 책이다.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이 일어난 지 30년이 지난 지금, 이 책은 대한민국 민주화의 시작점이란 평가를 받고 있는 박종철 사건과 민주화 역사상 가장 치열했던 1987년을 되돌아봄으로써 한국 언론의 방향성을 되짚어보는 것은 물론, 청년 박종철이 죽음으로써 찾고자 했던 대한민국의 모습이 무엇인지 숙고해보는 계기가 될 것이다. 

 

 

신성호

 

성균관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교수로 서울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성균관대학교 영어영문학과와 고려대학교 대학원(언론학박사)에서 공부했다. 대학 4학년이던 1980년 10월 중앙일보·동양방송 기자 시험에 합격했으나 다음 달 단행된 신군부의 언론통폐합 조치로 합격이 취소되는 아픔을 겪었다. 1981년 10월 공채 18기로 중앙일보에 입사했다. 이후 30년 동안 중앙일보 기자로 일하면서 사회부 법조 출입 기자(12년), 정치부 국회 출입 기자, 국제부장, 전국부장, 사회부장, 사회담당 부국장과 논설위원, 수석논설위원을 거쳐 계열사인 정보사업단 대표이사를 지냈다. 수석논설위원이던 2007년에는 고려대 초빙교수로 미디어학부에서 1년간 강의했다. 2011년 말 중앙일보를 퇴직한 뒤 2012년부터 서울대·고려대·연세대 등에서 강의했으며, 2014년 3월 성균관대 전임교수로 임용되어 언론 실무 관련 과목들을 강의하고 있다.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특종 보도로 1987년 한국기자협회가 주는 한국기자상을 수상했다. 법조언론인클럽 초대 회장과 법무부 변호사징계위원회 위원, 대검찰청 감찰위원회 위원,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법조인력양성제도개선 자문위원장, 방송통신심의위 원회 명예훼손분쟁조정부의장, 법학전문대학원평가위원회 위원, 대통령비서실 홍보특별보좌관 등으로 활동했다. 박사학위 논문으로 『박종철 탐사보도와 한국의 민주화 정책변화』를 썼으며 『6월 항쟁을 기록하다』『한국을 뒤흔든 특종?의 집필에 참여했다. 

추천사 민주주의 역사의 물줄기를 바꾼 ‘박종철’ 특종 

프롤로그 1987년을 기억하며

 

1장 박종철 사건 보도, 그 숨 가빴던 24시간의 기록

 

2장 한 젊은이의 죽음, 진실이 밝혀지기까지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급박했던 10일의 기록

고조된 민주화 열망

6월 항쟁의 시작, 박종철

박종철의 이름으로 성취한 국민의 승리

 

3장 대한민국 민주화는 박종철 사건 전후로 나뉜다 

1980년 서울의 봄, 다시 암흑 속으로 

국민의 귀를 막고 눈을 가리다 

가장 정확한 뉴스는 ‘대자보’와 ‘카더라 통신’2

인권 유린과 강압 정치

국민의 정치적 무관심을 유도하다 

왜 박종철인가 

 

4장 해외 사례로 본 박종철 사건의 의의

탐사보도로 역사를 만들다 - 미국 워터게이트 사건 

군부의 인권 탄압에 맞서다 - 프랑스 드레퓌스 사건 

한 청년의 죽음이 시민을 움직이다 - 튀니지 재스민 혁명

 

5장 언론, 민주화의 도화선에 불을 댕기다

제 기능을 상실한 언론 

박종철 사건, 언론이 진실을 알리다

사회면 기사에서 1면 톱기사가 되다 

정부의 강압에 맞서다 

언론, 6월을 이야기하다 

 

6장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는 없다 

한 젊은이의 죽음, 경찰이 은폐를 시도하다 

유족을 회유하고 시신 화장을 서두르다

사건 은폐에서 축소로 방향을 바꾸다 

검찰, 2월 말 범인 축소 알았다 

사건 축소 세상에 알려지다 

사건 후 1년, 부검의 일기 공개로 경찰 총수 구속되다 

경찰의 은폐·축소, 부메랑되어 돌아오다 

 

7장 진실을 밝히기 위해 움직인 사람들 

25년 만에 밝혀진 딥 스로트 이홍규

사체 화장 막은 공안부장 최환

물고문 의혹 제기한 의사 오연상 

물고문 혐의 처음으로 밝힌 정구영 서울지검장

박종철 1주기, 경찰의 회유·압박 공개한 부검의 황적준

 

8장 학생운동에서 시민운동으로 - 사회 각계각층의 움직임

직선제 개헌을 위한 움직임 

종교계가 움직이다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의 성명과 6월 항쟁

재야세력의 움직임 

학생운동에서 시민운동으로 

 

9장 뜨겁고 치열했던 1987년 6월

서서히 달궈진 6월의 이야기 

명동성당을 넘어 전국으로

경적운동부터 넥타이 부대까지 

시위 진압 위해 비상계엄령 검토했다 

보이지 않는 손, 해외의 민주화 압력 

 

10장 6·29선언이 우리에게 가져온 것들 

국민의 승리, 6·29선언 

6·29선언 이후의 이야기

6·29선언, 누구의 각본인가

 

에필로그 아직도 끝나지 않은 이야기, 박종철 

박종철과 1987년을 기억하다 

 

지금으로부터 30년 전인 1987년, 22세의 대학생 박종철이 경찰의 가혹행위로 죽음을 맞았다. 이 사건을 처음으로 세상에 알린 사람은 중앙일보 사회부 기자였던 신성호 현 성균관대 교수다.《특종 1987》은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과 6월 항쟁 과정에서 언론과 기자들이 어떤 역할을 했고, 어떤 과정을 거쳐 민주화가 이뤄졌는지를 당시 취재기자의 시각으로 소개한 책이다.

 

단순 사건 보도에서 탐사 보도로의 첫 전환

 -서슬 퍼런 권력에 맞서 언론의 제 모습을 찾다

전두환을 위시한 신군부가 집권했던 1980년대는 대한민국 민주화 역사상 가장 암울했던 시기로 일컬어진다. 대학가와 사회 각계각층에서 벌어진 민주화 운동을 탄압하는 과정에서 인권을 유린하는 것은 물론, 국민을 속이기 위해 언론 탄압 정책을 자행했다. 언론은 본래의 기능을 수행하지 못했고, 시민들 사이에선 “가장 정확한 뉴스는 ‘대자보’와 ‘카더라 통신’ 밖에 없다”는 말이 나돌았다.   

정권의 꼭두각시 노릇을 하던 언론이 제 기능을 찾게 된 계기가 바로 박종철 사건 보도였다. 신성호 기자의 첫 보도를 기점으로 각 언론은 사실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공권력의 고문에 의한 한 대학생의 죽음이라는 충격적인 사건 발생과 경찰 상급자들의 고문 경관 축소 조작 모의 등은 언론의 추적보도를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이는 6월 민주항쟁의 도화선이 되어 한국 민주화의 새 장을 여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당시 언론의 역할에 대해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는 《한국 민주주의의 조건과 전망》(1996)에서 “언론은 … 한국 현대 정치사의 결정적 계기에서 지대한 역할을 해 왔다. 이것은 언론의 비판적 기능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보여주는 예증이다. 1987년 6월 항쟁과 군부 권위주의의 해체를 가져오는 데도 역시 양심적이고 비판적인 언론의 역할은 커다란 기여를 하였다” 라고 평가했다.

1987년 민주화 과정에서 언론의 역할에 대한 평가는 엇갈리고 있다. 하지만 전두환 정권 말기였던 1987년 1월, 박종철 사건 보도는 적어도 한국의 민주화를 몇 년 앞당긴 것만은 자명한 사실이다. 또한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에 대한 신성호 기자의 첫 보도 후 언론은 탐사 보도로서의 제 역할을 수행하기 시작했다. 이를 통해 국민은 박종철 사건의 진상을 알게 되었고, 이는 곧 1987년 6월 항쟁의 기폭제가 된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박종철 사건과 1987년 한국 민주화 

1987년을 빼놓고는 한국 현대사를 이야기할 수 없다. 민주화의 한 획을 그은 6월 항쟁이 있었던 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같은 해 1월 14일 일어난 박종철 사건은 전두환 정권의 도덕성에 치명타를 가했고, 6월 항쟁의 도화선이 됨은 물론 결국 정권이 국민에게 무릎을 꿇은 6·29선언을 이끌어내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이뤄냈다. 

이 책은 사건을 첫 보도한 신성호 기자의 취재일지를 시작으로 마침내 6·29선언을 일궈내기까지의 과정을 생생하게 재구성하고 있다.  

1~2장에서는 당시 긴박했던 취재 현장과 전화로 기사를 송고하고 윤전기를 멈춰 세우면서까지 일궈낸 첫 보도, 그리고 그 여파로 전 언론사들이 어떻게 움직였는지를 다룬다. 3장에서는 이러한 박종철 사건이 대한민국 민주화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해 1980년대를 통틀어 설명하고 있다. 4장에서는 탐사보도로서의 언론사(言論史)적 의미, 인권 탄압에 맞선 기자 정신, 현대 사회에서의 언론이 나아가야 할 방향 등을 해외 사례와 견주어 설명한다. 이후 5장에서는 박종철 사건 보도 후 정권의 강압적 태도와 이에 맞선 언론과 시민들, 그리고 6월 항쟁이 이어지기까지의 과정을 소개한다. 6~7장에서는 경찰의 사건 은폐 조작과 마침내 관계자들이 구속되는 과정, 그리고 이를 위해 목숨을 걸고 진실을 밝혔던 당시 사건 관계자들의 모습을 다루고 있다. 또한 8~9장에서는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등 종교계를 비롯한 가회 각계각층의 움직임, 경적운동과 넥타이 부대 등 범시민운동으로 확산된 민주화 운동에 대해 자세히 다루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 10장에서는 마침내 일궈낸 6·29선언의 진실과 그 이후의 이야기에 대해 다루고 있다.

 

박종철 30주기, 우리에게 남은 과제 

저자는 이 책의 마지막 에필로그의 제목을 ‘아직도 끝나지 않은 이야기, 박종철’이라고 붙였다. 22세의 청년 박종철의 죽음이 한국 민주화의 불씨가 된 지 30년이 흘렀다. 그 30년 동안 한국은 대통령 직선제 개헌, 최초의 문민정부, OECD 가입, IMF 외환 위기 등 많은 일을 겪었다. 이제 민주화는 갈망의 대상이 아닌 너무나 당연한 일상이 됐다. 그에 따라 ‘박종철’이란 이름은 역사의 뒷 켠으로 물러난 채 서서히 잊혀져가고 있다. 그러나 저자는 우리 모두에게 묻는다. 

‘지금 우리는 청년 박종철이 꿈꾸던 세상에 살고 있는가?’

한국은 2차 세계대전 이후 독립한 나라들 가운데 유일하게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일궈냈지만, 내부를 들여다보면 여전히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 정치권은 진영과 계파로 나뉘어 국민의 신뢰를 잃은지 오래고, 북한의 잇따른 핵 개발은 기본적인 삶을 위협하고 있다. 소득수준이 월등히 높아졌다고는 해도 오늘날을 사는 젊은이들은 ‘수저 계급론’을 거론하며 지금 우리 사회가 공정하지 못하다고 생각한다. 

박종철 사건과 6월 항쟁이 30주년이 되는 지금, 우리는 지금 우리의 모습을 30년 전 과거의 거울에 비춰볼 필요가 있다. 저자는 다시 한 번 묻는다. 

‘우리 사회는 6월 항쟁 당시 시민들이 원하는 모습인가?’

저자의 말처럼 오늘 우리의 모습이 그들이 꿈꾸던 세상과 거리가 있다면 박종철 사건은 30년 전 끝난 것이 아니라 아직도 진행 중이라 할 수 있다. 이것이 우리가 박종철을 기억해야 하는 이유이며, 저자가 이 책을 출간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