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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래가 되는 꿈
- 저자 신동옥 | 출간 2016.11.01
- 정가 9,000원 | 정보 160쪽 / 신국변형(125*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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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절벽에서 부르는 재활의 노래
문예중앙 시선 47호는 2001년 ≪시와반시≫로 등단하여 시와 평론에 걸쳐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신동옥 시인의 세 번째 시집 『고래가 되는 꿈』이다. 그는 이번 신간을 그의 시론인 열음(烈音)과 여의(餘意)에게 바치고 있다. 열음과 여의는 그의 딸아이와 아내의 이름이다. 가족이 그의 시론인 것이다. 가족이 있으니 집이 있다. 집은 두 채다. 하나는 사람의 집이고 다른 하나는 시의 집이다. 대문은 하나다. 하나의 대문을 통해 그는 가족과 함께 집을 드나든다. 두 채의 집이 하나의 대문 안에 있으니 두 집은 결국 한 집이다. 사람이 시론이니 사람의 집이 곧 시의 집이다. 시인의 말에서 시인은 “인간은 꿈꾼다. 고로 인간은 변한다.”라고 썼다. 이전 두 권의 시집에서 이 세상에 내던져진 존재의 떠도는 삶을 악공의 노래와 고통스런 춤사위로 연출했던 그는 이번 시집에서 확실히 변하고 있다. 꿈꾸기 때문이다. 그것은 사람으로 살고 사람으로 시를 쓰는 꿈이다. 그러니까 ‘고래가 되는 꿈’은 삶의 기원을 찾기 위한 회귀의 꿈이라기보다는 사람으로 살기 위해 “처음부터 다시 진화하는 법”을 깨우치고자 하는 재활의 꿈인 셈이다. 수록된 49편의 시에는 고래가 되는 꿈을 꾼 후, 삶의 초짜가 되어 졸고가 되어 그 앞에 다시 선 치욕의 행간을 건너가는 사람의 목소리가 담겨 있다.
생후의 리듬으로 이름 위에 이름 붙이기
이 시집은 프롤로그와 에필로그가 1부와 2부를 감싸고 있는 구조로 되어 있다. 프롤로그에서는 고래가 몸을 던진 바닷물이 “상서로운 소리를 내며 / 물이 흘렀다는”(「드러눕는 밤」) 길음으로 이어진다. 길음은 그가 지금 살고 있는 곳, 송천동이다. “흙먼지 날리는 재개발지구”인 이곳에서 그는 “큰大 자로” 드러누워 “지구의 현생 인류의 이름으로” 시집의 대문을 연다. 길음이었던 송천동. “길음 물소리에 취해 자란 커다란 소나무 아래 맑디맑은 샘이 하나 있다 하여” 이름 붙여진 송천. 그곳에서 그는 아내와 집을 꾸민다. 이미 길음의 물이 다 빠진 뒤다. “물소리에서 시작된 동네의 내력”을 확인하려는 듯 몸을 매만지면 아침마다 골목 끝에 도시가 사라진다. 사라지는 도시 속으로 “시간강사 밥벌이”를 나가는 그의 대문 안으로는 재개발 공고문과 반대 공고문이 날아든다. 그 대문 안에서 아이가 태어난다. 아이는 갓 배운 한국말로 아름답게 보이는 송천동의 골목을 시인에게 가르친다. 골목의 실상을 속으로 삼키는 시인의 두 손에는 허기짐과 목마름이 채운 무한대 모양의 수갑이 말줄임표로 채워져 있다. 재활의 꿈을 꾸고 깨어난 곳이 또다시 재개발지구라면 사람은 어디에서 살아야 하는 것인가. 길음, 즉 송천은 메말랐다. 시인은 “아이가 앓는 환후를 뒤쫓으며 삶을 꾸려”(「생후」)갈 것이라고 썼다. 그 삶은 길음 위에 송천이라는 이름을 붙였듯이, 송천 위에 또 다른 이름을 붙이는 제자리의 삶이 될 수 있다. 아픈 아이를 안고 병원을 나설 때, 삶을 다한 뒤 재활한 시인과 생의 시작을 다한 아이 모두에게 “아득한 생후의 리듬으로 / 해가 뜬다”(「생후)」). 그들은 지구의 현생 인류다. (현생 인류로 다시 태어나도 삶은 고단하구나. 하지만) “아가, 내일은 집으로 돌아가자꾸나” (가서 함께 이곳의 이름을 지어나가자꾸나). “말을 배워서, 새의 이름을 이야기하고, 별들의 이름을 다시” 짓는 아이를 따라 대문 안에서 대문 밖 골목에서 “엄마도 아빠도 병도 삶도 모두 초짜”인 그들은 셋만의 이름 붙이기로 송천동을 조금씩 옮겨나갈 것이다.
시인이라는 직업을 가진 여백 제도사
2부는 23편의 ‘비트’ 연작시로 채워져 있다. 비트는 ‘비밀 아지트’를 뜻하는 군사 용어다. 한 편 한 편 세밀한 독서가 필요한 이 연작을 읽어나가기 위해서는 독자의 주관적인 작전지도가 필요하다. 거칠게 약도를 그리면 실패한 자, 낙오한 자, 조난자, 파국에 이른 자가 시인으로 재활하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한때 우리는 같은 상처의 다른 흉터를 응시했다.
출구가 없는 터널 속으로 들어가 그대로 주저앉고는
빠져나올 길을 영영 잃어버려서
거기다 집을 짓고 산다, 파국이라는 비밀 아지트 속에서
접선할 방법을 영영 잊어버려서
- 「凶으로 지을 수 있는 모든 것-비트 1」 부분
‘작전에서 소외되어 버림받’은 ‘나’는 길음 위에 송천이라는 이름을 붙이듯 누군가의 “허물어져가는 무덤”(「저격수-비트 2」)을 파내고 비트를 짓는다. 그곳이 그의 집이다. 알 수 없는 “나라의 이름 모를 전쟁에 사로잡힌” 나와, “이름 모를 나라의 알 수 없는 전쟁에 사로잡힌”(「사랑-비트 4」) 당신은 전쟁의 포로다. 나와 당신은 한때 같은 상처의 다른 흉터를 응시했으나 이제 다른 상처에 같은 처방을 쓴다. 그것은 서로를 향해 총을 겨누는 것. 서로 싸운다. 그게 사랑이다. 나와 당신은 싸우기 위해 잡혔는지 잡히기 위해 싸웠는지 모를 치욕적인 아군이다. 당신은 지금의 나고, 나는 지금의 당신이다. 나와 당신은 서로에게 유일한 적이다. 비트 속의 사랑은 적을 용서하는 게 하니라 총을 겨누는 것이다. 서로의 죽음까지 모조리 죽이는 것이다. 그게 무덤 위에 지은 비트 안의 사랑이고 당신은 ‘나’의 “망가지고 병든 그림자”(「종생기-비트2」)다. 서로의 죽음까지 남김없이 죽였을 때, 비트는 무덤이 되고 무덤 위엔 꽃이 핀다. 그것은 시인이다. 신동옥은 이 시인을 죽음조차 남지 않은 여백을 제도하는 “눈먼 여백 제도사”(「시인-비트 23」)라고 칭했다. 그리고 그 시인은 고래가 되는 꿈을 꾼다. 다시 사람이 되어 사람을 살고 사람의 시를 쓴다. 그 첫 번째 시는 1부를 여는 시다. 그렇게 이 시집의 대문은 다시 열린다.
추문이 꽃 사태처럼 바람에 불려간 자리
낮꿈의 속임수를 벗어나려 안간힘을 쓰는 밀어
오래 귀담아들을수록 달콤해만 가는 거짓
꼭 같은 찻잔을 감아쥘 때 떠는
꼭 같은 파동의 상쇄
번개의 끈으로 묶어놓은 고요
그대였던 단 한 사람을 일깨우는 노래가 타오르는 촛불처럼 일렁인다.
- 「시」 전문
애틋하고 뭉클한 사람의 말
이 시집에는 두 개의 집이 있다. 하나는 송천동의 집이고, 또 하나는 비트이다. 송천동의 집이 길음의 물소리와 관련된 물의 집이라면, 비트는 폭격과 총알과 탄도 즉, 전쟁과 관련된 불의 집이다. 불 속에서 살 수 있는 생명은 없다. 불 속에는 죽음만이 있을 뿐이다. 하지만 불은 생명을 거두어 그것을 다음 세상으로 보내준다. 물이 그것을 데려온다. 그러므로 대문은 하나다. 시집 곳곳에 등장하는 ‘얼음’과 ‘물’과 ‘불’은 생명의 순환을 보여준다. 그래서 시인은 “이것은 데자뷔다.”(「종생기-3」)라고 말한다.『고래가 되는 꿈』은 이 무한의 수갑을 찬 시인이 이번 생에 정성들여 길어 올린 애틋하고 뭉클한 사람의 말이다.
시인의 말
누군가,
이 빠진 손톱 한 쌈을 묻어두고 영영 다른 땅으로 떠났다는 사연
시간이 흘러,
그대라는 말은 내가 여기 돌아와 처음 씻어 헹군 꿈이었고
나라는 말은 그대 입술이 처음 삼킨 비밀일 테니
익숙한 농담과 소문들 갈피로 끝없이 웃자랄 삶의 모종들
푸릇푸릇 싹트는 귓바퀴, 이파리 반질반질
굴곡진 푸르름 속에 다시 쓰일 끝없는 이야기.
인간은 꿈꾼다. 고로, 인간은 변한다.
2016년 가을, 南陽에서 吉音까지
_ 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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