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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불교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한 임곤택 시인의 두 번째 시집 『너는 나와 모르는 저녁』이 문예중앙에서 발간됐다. 첫 시집 『지상의 하루』에서 오래 벼린 절제된 언어로 "비루하고도 소중한 삶의 속성을 '하루'의 은유"로 빚어냈던 시인이 이번 시집에서 보여주는 것은 “시의 고유한 문법과 스타일을 구축하고 변주하는 물적 토대”로서의 산책이다. 이 산책은 도시의 거리와 풍경을 관찰하는 산책이 아니라 낱낱의 걸음으로 촘촘하게 도시를 만드는 산책이다. 그의 시는 일상이라는 거대한 악보가 영원한 도돌이표에 속박되어 있을지라도 지금-여기의 한 걸음이 튕겨내는 현의 떨림은 매 순간의 도시의 얼굴을 새롭게 빚어낸다는 것을 보여준다. 시인은 도착이자 떠남이고 멈춤이자 이동인, 순간이자 지속이고 반복이자 변화인 저 걷기의 완급을 일상의 리듬으로, 존재의 리듬으로, 문장의 리듬으로 이전시키는데, 이 변주의 리듬을 타고 우리는 지체와 기다림과 예정과 기억과 피로와 허무와 사랑과 위로의 도시, 그 도시의 쓸쓸한 살기와 까다로운 풍경에 ‘조금 더’ 도착하게 된다. 

저자 : 임곤택

전남 나주에서 태어났으며, 2004년 《불교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지은 책으로 시집 『지상의 하루』와 시론서 『현대시와 미디어』가 있다. 고려대 교양교직부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1부

그때 
동작 
집 찾기 놀이 
네 눈 속 푸른 
일몰의 싸움꾼 
비는 이틀째 
잎 잎들 소리 소리들 
펜타토닉 
다짐하는 아침 
버스 증명 
스티비 원더 
무관한 대면 
대화의 일치 
바람과 blues 

2부

지배하는 눈 
돌아가는, 되돌아가는 
몸의 꿈들 
화요일은 봄 
꽉 찬, 가득한 
그곳은 늘 
잎 잎들 소리 소리들 2 
양들은 낙엽을 타고 온다 
9월에서 시월 
波 
적당하지 않은 때 
야스쿠니신사 
추신 

3부

동네에서 동네 사람들 
Boogie Street 
제목은 숨겨진 이야기 
뷰파인더 
12시에서 13시 
너의 약속된 오후 
연착 
모퉁이 돌면 
두 번째 시월 
발굴 
세븐일레븐 
눈이 쌓이다 눈이 그치다 
적당한 때 
천안에서 안양까지 

4부

스프링클러 
끝없는 제국 
집요 
저녁의 新婦 1 
저녁의 新婦 2 
저녁의 新婦 3 
저녁의 新婦 4 
저녁의 新婦 5 
저녁의 新婦 6 
젖을 빠는 동물 
가장 작은 식사 
젊은 도공 
화해의 시간 
한 장의 평화 

일상의 허무를 견디는 뜨거운 허기

임곤택의 시에는 늘 반복이라는 테마가 짙게 깔려 있다. 반복은 무심하게 되풀이되는 삶의 저 끈덕진 구애와 추방, 내밀었던 손을 다시 거두는 운명의 잔인한 손사래에 대한 재현이자, 그 재현의 그림자가 길게 드리우는 허무의 주조음이기도 하다. 일상은 버스 노선처럼, 버스 창밖으로 흘러가는 풍경처럼 반복되고 순환한다. 잔인할 정도로 건조하게 묘사되는 일상의 반복을 목격하며 우리는 입안에서 서걱거리는 허무를 느끼게 된다. 그런데 시인은 이 허무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지 않는다. 반복되는 일상의 궤도는 자동화된 기계에 의해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궤도를 따라가는 인간의 안타까운 안간힘으로 돌아간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인은 어이없고 틀림없는 반복의 소용돌이 속에서 “기대 없이 오직 / 진군하는 순간의 황홀”(「돌아가는, 되돌아가는」), 과거도 미래도 없는 지금-여기의 지나감 자체에 집중한다. 삶의 내용보다는 삶의 진군 그 자체를 믿고 가겠다는 단호한 허기로 스스로를 다독이면서, 뜨거워지고 다시 뜨거워진다. 

순간의 황홀을 포획하는 시라는 말의 운동

일상이 버스 노선처럼 거의 변하지 않는 궤도 위에서 돌고 도는 것처럼 보인다 해서 삶이 곧 단순해지거나 한 손에 그러모아지는 것은 아니다. 시인은 “버스는 증명하기 어렵다 / 버스 기사의 동작은 거의 변하지 않고 / 어둡다 많다 / 구분할 수 없다”(「버스 증명」)고 말한다. 버스 노선처럼 반복되는 것처럼 보이는 지루한 일상 속에는 여전히 까다롭고 미심쩍은 순간들, 어둡고 많고 구분할 수 없는 순간들이 켜켜이 쟁여 있는 것이다. 시인은 이러한 일상의 흐름을 칼로 쳐내 순간의 단면을 잡아내고, 거대한 도시의 틈새와 균열마다 숨겨져 있는 미지의 공백들, 한 순간에서 다음 순간으로 건너가는 사이의 무수히 꽉 찬 공백을 정밀하고도 신중한 손길로 빚어낸다. 그가 “이런 때를 잡아야 해”(「뷰파인더」)라고 말할 때, “이런 때”는 지루한 덩어리로 뭉쳐져 있던 일상이 비눗방울 같은 작은 사이들로 쪼개져 클로즈업되는 순간들, 반복의 예감이 알 수 없는 의욕으로 변주되는 순간, 예기치 못한 표정이나 감정이 도래하는 순간, 어둡고 많고 구분할 수 없는 일상이 선명한 시의 리듬으로 고양되는 순간이다. 이 순간을 포착하겠다는 다짐이 바로 산책의 집중된 힘이자 시 쓰기의 태도이다. 그러니까 그의 산책은 지루한 예감을 정지시키고 순간의 황홀을 포획하는 저 시라는 말의 운동인 것이다. 

스푸마토의 리듬을 타고 번지는 의미 

임곤택의 시가 우리를 그의 반복되는 산책으로, 그의 시선이 머무는 도시 구석구석으로, 그의 말들이 열어 보이는 어떤 순간으로 끌어당기는 힘은 무엇보다도 저 매혹적인 리듬에서 나온다. 그의 문장은 잘 조율된 악기처럼 정밀한 긴장감을 품고 있지만, 그것이 연주되기 시작하면 의외의 빈자리들이 생겨나면서 예기치 못했던 울림과 돌연한 의미가 만들어진다. 이것의 독특함은 오히려 문장 안에 쓰이지 않은 것, 그러니까 비워두거나 일부러 생략된 자리, 다른 것으로 대치되거나 종결된 자리에서 리듬과 의미가 생성된다는 데 있다. 경계선을 부드럽게 퍼트리는 스푸마토 기법처럼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한 불확정적 상태로 의미가 번져나가게 만드는 것이다. 여기에는 무언가를 단언하고 확정하기를 꺼리는 시인의 삶의 염결성과 언어에 대한 태도와 미학적 판단이 서려 있고, 의미가 충돌하고 겹치고 스미는 사이에 또 다른 의미의 가능성이 피어나게 하는 은밀한 배치가 숨겨져 있다. 주저하고 머뭇거리고 감추고 물러나는 방식으로 끝없이 지연되는 의미들의 뒷걸음질을 따라 형성되는 임곤택 시의 리듬은 허무와 안간힘과 집요함이 단단한 물질성을 입고 들어서는 의미의 자리이다. 이때 그가 포착한 순간들은 추상적 관념으로 함몰되기 쉬운 저 허무의 감각을 낱낱이 껴입은 채 돌처럼 단단한 얼굴을 하고 우리에게 도착한다. 

시인의 말

마트 하나는 문을 닫고
편의점은 두 개 더 늘었다

담배와 연기
술이 채워진 아메리카노 미들 사이즈
이런 아침은 어떤가
창 너머 창들은 안녕하신가

일찍 싸우고 늦게까지 위로받으려는
사내들의 고성방가
두 겹으로 주차된 자동차

누가 가장 좋은 값을 치를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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