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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발적이며 새로운 레이어들 


2009년 중앙신인문학상으로 등단한 박성현 시인의 첫 시집 『유쾌한 회전목마의 서랍』이 문예중앙에서 출간되었다. 박성현의 첫 시집은 여러 겹의 레이어를 지닌 다면체와도 같은 시집이다. 여러 각도에서 대상을 바라보는 숱한 시선들은 시를 하나의 의미로 고정시키려 하지 않는다. 이 입체적인 조감을 통해 여러 시들은 시집의 차례에 놓인 선형적인 흐름을 거부하며 동시다발적으로 출현한다. 이 독특한 출현은 가상현실과도 같은 무대 위에 등장하는 수많은 ‘춘자’들의 얼굴과 몸짓으로 우리 앞에 펼쳐진다.

박성현


서울에서 태어났다. 2009년 <중앙일보> 중앙신인문학상으로 등단했다. 서쪽 동인이다.

1부
하루 
회색의 식탁
사과의 회전 
리옹에서 하룻밤 
여배우의 외출 
녹의 시간 
두 사람 
저녁의 먼 곳 
연민 
아직도 빗물이 흘러내리는 우산과 알렙이 앉았던 의자 
식물의 서쪽 
잎 없는 나무는 혀가 없는 입으로 

2부
호텔 캘리포니아 
현기증
금요일 밤의 불운 
춘자 혹은 비디오 아트 
죽은 자들의 허기 
춘자의 감정 
춘자의 구경 
춘자의 유혹 
춘자의 의견 
정오가 지난 동물원 
빛의 모서리 
바다 끝 바다 저편, 롤러코스터 
춘자들 
C의 때늦은 저녁 식사 
하드보일드 나다 
초콜릿 상자를 들고 가는 춘자의 너무 느린 나선형 
춘자의 이중생활 
나쁜 쪽으로 
지하생활자 - 수집가·2

3부
14 
냄새의 식욕 
방향을 바꾸면 
액자는 꿈을 꾼다 
아주 밝은 주황의 멈춤 
고양이, 검정 
바깥은 자정입니까 
굿바이, 포도밭 
파란만장 
무관심의 균형 
No.4 심야극장 
식탁의 온도 
거울의 레시피

4부
유쾌한 회전목마의 서랍
전망 좋은 복도 
빛나는 초록은 벌레 먹은 이파리처럼 
알려지지 않은 문자들의 세계
목탄으로 그린 달은 축축한 눈을 뜬다
5부
넙치 
배달된 사람 
없는 손 
이국적인 혹은 뒤돌아보는 순간 
지금 이곳의 쓸쓸함 
자정의 속도
커튼, 콜 
5분 후 
사진관 옆 왼쪽 모퉁이 
비타민 사용설명서 
납의 기록 
사나운 연어 떼가 밀려갔다 
철공소 
저녁 한때의 카니발

해설 

도서관, 혹은 비디오 아트

박성현의 시집은 누군가에겐 끝없이 통로가 이어진 미로 같은 도서관과도 같다. 그 도서관은 보르헤스의 알렙을 지나 히로시 스기모토의 풍경, 한트케의 무대, 세르의 가방을 지나 카프카의 법원에 이른다. 이들에게 이 시집은 “알려지지 않은 문자들의 세계”일 것이다.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수많은 장면들이 동시다발적으로 흘러나오고 있는 모니터와도 같다. 그 모니터에는 총에 맞는 앤디 워홀-혹은 춘자와 몇 번이고 추락하는 경비행기, 다각도로 관찰되는 사과, 붉은 멍 자국이 드물게 피어 있는 손이 뒤집히는 광경, 죽은 누군가의 악몽이 끊임없이 재생되는 중이다. 이런 이들에게 이 시집은 새벽 내내 채널이 돌아가는 TV가 놓인 호텔 캘리포니아의 낡은 방이거나 수많은 모니터에서 각기 다른 영상이 송출되고 있는 비디오 아트가 전시 중인 미술관일 것이다.

춘자가 총에 맞을 때 그녀는 TV 쇼를 보고 있다는 착각에 빠진다 매춘부이자 급진적 페미니스트 작가인 솔라니스가 그녀를 향해 방아쇠를 당긴 이유는 손에 쥔 아이스크림이 녹아버렸기 때문이다 1968년 6월, 50℃가 넘는 폭염이 북아메리카를 덮쳤다 어제 총알이 위장을 관통할 때춘자는 애인과 함께 팝콘을 씹으며 TV 쇼를 보고 있었다
-「춘자 혹은 비디오 아트」 부분

박성현은 문학, 미술, 음악 등 다양한 장르에서 받은 영향을 숨기지 않고 적극적으로 인용하고 차용한다. 이를 통해 그의 시는 풍부한 소재와 다양한 맥락을 지닌 알레고리가 된다. 그 알레고리극에 등장하는 주연과 조연과 까메오와 관객은 모두 ‘춘자’라는 가면을 쓰고 있다. 그래서 춘자는 춘자를 연기하며, 춘자들은 춘자를 연기하는 춘자를 구경하기도 한다. 

다양한 인물들에게 춘자라는 가면을 씌움으로써 그의 시는 다양한 주체들이 갖는 다양한 시선으로 대상을 그려내면서도 그 주체들을 하나의 이미지로 떠오르게 하는 데 성공한다. 그것은 해설을 쓴 장은석 평론가에 따르자면 “춘자가 무수한 관계의 접점을 지닌 서로 다른 춘자들로 진화하는 것처럼 우리도 새로운 관계의 접점을 체험하고 직접 상상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되는 일이다. 그의 시를 읽는 것은 “바닥에 겹쳐진 바닥이 서로 어긋나고 이어지는 틈 그리고 그 사이에서 자라는 식물들”(「알려지지 않은 문자들의 세계」)을 보는 일이며, 시의 행간에서 코끼리의 춤과 무덤과 사물의 무한과 꿈을 읽어내는 독서 체험의 순간이다. 부디 많은 춘자들이 “백과사전은 사실과 멀어질 때/오히려 ‘사실’에 가장 가깝”다고 말하는 박성현의 시구에서 모순이 담고 있는 진리를 느낄 수 있기를 바란다.

미지여서 사랑할 수밖에 없는 세계

박성현의 사물들은 낯설다. 「저녁의 먼곳」에서 「아직도 빗물이 흘러내리는 우산과 알렙이 앉았던 의자」, 그리고 「식물의 서쪽」으로, 그가 펼쳐내는 세계는 미지에 가깝다. 미지여서 사랑할 수밖에 없게 만든다. 가깝게 멀고 멀어서 가깝다. 그것은 말로 말하기를 거부하는 것과 같다. 시인은 이것을 감각적으로 보여준다. 그러나 사물이 멀어지고 아주 멀어서 보이지 않을 때까지 오래도록 뜨겁다. 난 그런 그의 언어를 좀 오래도록 사랑하게 될 것 같다. 그의 시선은 황폐한 북쪽 해안과 사막의 접경지에 이르지만, 여러 개의 방향은 하나의 방향도 아니어서 방향이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모든 방향으로도 빛날 수 있음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그의 시를 보고 있으면 내 마음에도 장소가 생기고 색깔이 생긴다. 박성현 시의 역동성이 주는 즐거움이다. 그는 끊임없이 배신하고, 끝없이 달아나고, 멈춤을 통해 멈춤을 허락하지 않는다. 멈춤의 연속선 위에서 끊임없이 미끄러진다. 그러나 이러한 미끄러짐이 아름다운 것은 열렬한 삶의 흔적들이라는 데 있다. 비록 그것이 무엇이든 끊임없이 움직인다는 것, 나아간다는 것, 그것에 있다. 기록되지 않고 남김없이 사라지고 싶은 마음, 그것과 다르지 않다. 사물들의, 말들의 카니발이다. _이승희 시인 추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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