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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재정 시인의 첫 시집 『내가 스패너를 버리거나 스패너가 나를 분해한 경우』가 문예중앙에서 출간되었다. 시인이 2009년 진주신문 가을문예에 「뱀」으로 등단한 이후 써 내려간 57여 편의 시를 9년 만에 묶은 작품이다. 오랜 시간 공을 들인 시집인 만큼, 시집에 수록된 시들은 다양한 주제적 프리즘을 관통한다. 삼국유사나 아즈텍 신화에 등장하는 신이나 인물 등이 가공되어 시 속으로 흘러 들어오는가 하면, 서정적인 자아를 착란의 형식으로 드러내기도 하고, 노동하는 존재들의 일탈을 다양한 관점으로 탐구하기도 한다. 이런 다양한 세계를 보여주는 데에서 독자들은 겹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나비의 꿈을 상상할 수 있다. 

임재정

 

충남 연기에서 태어났다. 2009년 [진주신문] 진주가을문예에 「뱀」이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1부-내연기관들 
이은주 
내연기관들 
몹시 구릿한 로켓 
새벽 네 시의 지느러미 
눈사람의 가계 
사다리를 탄 피노키오 
잠; 나비박제 
나와 금홍에게 헌화 
스패너와의 저녁 식사 
L과 나의 분식회계 
회소회소 
송장벌레의 혹하는 노래 
바나나를 왜 
피그미 아빠의 나른한 동물원 
내 친구는 정원사 
나비 
공원묘지 가는 길 
꽃피는 자세, 하품 
귀거래 

2부-샴, 당신들의 이야기 
달달당국記 
모퉁이, 농담들 
나는 날마다 5크로네 정도가 필요한 것 같습니다 
저탄고에 속한 어둠 중에서 ‘나’ 부분 
샴, 당신들의 이야기 
나비 금홍 탐탐 
끼리 
이별을 켰다 껐네 
소심하게 사과 
‘혀’ 중에서 촛농인 부분 
문어꽃 따러 오세요 
어때요, 모란 
등에 가지 못한다 
그 사람 
‘반죽’ 중에서 어둠 부분 
양파 하나가 한 자루를 썩히지 
얼룩과 나의 크리스마스 
모래뿐인 이야기는 싫어 
빈집 

3부-전체와 부분 
전체와 부분 
마리에서 로렌까지 
연금술사들 
얼음 도시 구획 
몸 밖의 정거장 
‘영원’ 중에서 반짝이는 부분 
해바라기들 
즐거운 수리공 
얼룩이 가득한 방 
저수지 
뱀 
여러분 가슴께 
종소리 
꼬리뼈를 뺀 나머지 
우리 집 동백 구경 
물에서 주운 복숭아는 
고드름이 자라는 방향 
질서, 라 부르는 경험 
‘밤’ 중에서 어둠으로만 치댄 반죽 

꿈꾸는 공구들, 공구들의 꿈 
임재정 시인의 시에는 노동하는 자와 사물이 자주 등장하는 것이 특히 인상적이다. 시집의 제목부터가 “내가 스패너를 버리거나 스패너가 나를 분해한 경우”이다. 시집의 제목이 된 해당 구절이 등장하는 시 「스패너와의 저녁 식사」를 읽을 때 우리는 강철로 만들어진 스패너라는 사물이 지닌 물성 그 자체가 만들어내는 정신적인 면과 맞닥뜨리게 된다. 

모차르트와 칸트는 잘 몰라요 마구 대하면 물고 열 받은 만큼 체온이 변할 뿐이죠 스패너 말이에요 내 손바닥엔 그와 함께한 숱한 언덕과 골짜기로 가득해요 
--「스패너와의 저녁 식사」 부분 

스패너는 예술도 철학도 모른다. 다만 사나운 개처럼 거칠고, 강철로 되어 있기에 열 받은 만큼 뜨거워질(물론 식을수록 차가워지기도 할) 뿐이다. 이런 스패너와 함께하는 한 사람의 인생 또한 대개는 모차르트나 칸트와는 별 상관이 없다. 그는 국외로 여행을 떠나는 대신에 스패너를 들고 기름때 낀 숱한 언덕과 골짜기로 드나든다. 물론 그들이 함께하는 저녁 식사는 근사한 테이블 위에서 일어나는 낭만적인 한때가 아니고 그저 아홉 시 뉴스 같은 잡탕 재료들을 다 긁어모아 끓인 찌개가 놓인 일상일 따름이다. 이런 풍경이 펼쳐지는 시에서 말하고 있는 ‘패륜’은 의미심장하다. 그에게 패륜이란 그가 스패너를 버리거나 스패너가 그를 분해할 경우이다. 이 구절은 자신이 스패너와 분리될 수 없음을 일러줌과 동시에 사물, 대상으로만 여겨지던 스패너가 주체의 자리를 위협할 수도 있음을 암시한다. 결국 이는 꿈꾸는 주체가 자아를 가진 ‘나’들에게서 사물들로 옮겨가는 풍경을 상상하게 만든다. 
사물들은 의인화를 거치는 과정에서 자연스레 유한한 생의 비극까지 껴입는다. 이러한 비극이 슬픔으로 드러나지 않고 위트와 유머로 아이러니하게 표현되는 것 또한 임재정 시의 특징이다. 아이들이 만들었지만 수염을 달아 어른인 눈사람은 빛을 받고는 녹아내리기 시작한다. 눈사람에게 녹아내림은 곧 사형 선고와도 같다. 이 죽음이 진행되는 동안 눈사람은 죽음을 피하기 위해 자신을 만든 아이를 ‘아버지’라 칭하며 “어이, 아버지 네 다락방에/나를 데려다주지 않겠니, 난 네 아들이니까”(「눈사람의 가계」)라고 능청스럽게 말한다. 한편 「내 친구는 정원사」라는 시의 화자는 자신의 친구 ‘포크레인’을 정원사로 소개한다. 그가 삽차를 정원사라고 소개하긴 했지만, 삽차가 심고 가꾸는 꽃나무와 화단은 다름아니라 죽은 이들을 묻는 장지다. 죽음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다루면서도 시의 분위기는 무겁지 않다. 화자는 ‘포-크-레-인’이라는 친구의 이름을 잘 뜯어서 보면 “손잡고 돌던 멜로디를, 소녀를/황토밭을 내닫는 소나기를 만날 수도 있지”라고 너스레를 떨며, 죽음 앞에서 딱딱히 굳은 사람들을 보고는 “어허, 사람들/어깨들 풀고 인사 좀 놓으라니까”라고 한마디 얹기까지 한다. 
노동과 친연성을 갖는 사물과 공간들, 가령 내연기관, 저탄고, 스패너, 드라이버, 롱로우즈 등등이 임재정 시인의 시에 자주 등장하는 것은 그가 도구와 기계 들이 갖는 물성에서 생의 비밀을 발견해서이기도 하겠지만, 세상을 바라보는 시인의 시선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가령 그에게 세상은 고장 난 것들로 가득한 공간이다( “나는 우울해, 세상엔 고장 난 것들뿐이니/나는 모든 게 혼란스러워”「즐거운 수리공」 부분). 그래서 그는 기꺼이 공구들을 들고 고장 난 세계를 고치는 수리공이 되고자 한다. 『내가 스패너를 버리거나 스패너가 나를 분해한 경우』는 수리공이 된 시인, 혹은 시인이 된 수리공의 노동 일지이자, 패륜을 저지른 공구들이 꾸는 꿈의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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