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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끝
    저자 최규승 | 출간 2017.04.05
    정가 9,000원 | 정보 160쪽 / 신국변형(125*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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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규승 시인의 세 번째 시집 『끝』. 이번 시집에는 298개의 시 조각들이 ‘끝’이라는 제목 아래 몽타주의 기법으로 엮여 있는 한 편의 장시만을 수록하고 있다. 이로운 표현이나 의미심장한 함의 등 독자가 시를 읽을 때 기대하는 요소들을 찾아보기는 힘들다. 시인도 “이 시에는 여러분이 기대하는 것은 없다”(#71)고 말했다. 시인은 “격언도 떼어주고 깨달음도 베어주고 예찬도 돌려주고 찬양도 싸주고 은유도 나눠주고 제목도 버”(#46)렸다. “어떤 전위적인 조각으로도 비석의 상투를 넘어서지 못”(#19)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까지 발표된 시는 시가 아니”(#2)라고 했는지도 모른다. 

저자 최규승은 경남 진주에서 태어났다. 2000년 《서정시학》신인상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무중력 스웨터』, 『처음처럼』이 있고, 육필 시집 『시간 도둑』이 있다.


해설 
블랙홀의 안쪽 / 함성호

우주로 확장하는 언어의 몽타주 
문예중앙 시선 49호는 2000년 《서정시학》 신인상을 받으며 등단한 최규승 시인의 세 번째 시집 『끝』이다. 이번 시집에는 298개의 시 조각들이 ‘끝’이라는 제목 아래 몽타주의 기법으로 엮여 있는 한 편의 장시만을 수록하고 있다. 지난 시집으로 “시라고 불리는 제도적 문법 이후의 시”를 쓴다는 평가를 받은 바 있는 시인이 이번 시집에서 보여주는 것은 “말과 말로 이어지는 허상”(#37)의 세계다. 언어는 구체적인 사물이든 추상적인 관념이든 대상을 전제로 한다. 하지만 언어는 그 대상을 있는 그대로 재현하지 못하기에 허상이다. 최규승의 시는 언어란 종지부가 없는 시작과 끝 사이에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허상임을 잘 포착하고 있다. 그런데 그것이 언어의 문제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광대무변한 우주의 문제로 확장된다. 해설을 쓴 함성호 시인은 이 허상들을 블랙홀의 외부에 저장된 2차원 홀로그램 같은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시인은 그것을 말로 설명하지 않았다. 언어의 풍경으로 보여주었을 뿐이다. 그것은 언어를 다루는 자신의 몸조차 허상임을 알기 때문이다. 함성호 시인은 허상의 세계를 허상으로 보여준 시인의 태도를 ‘허깨비인 것을 허깨비인 것대로 사랑하고 말겠다는 안간힘’, ‘슬프고 아름다운 포옹’, ‘사랑’이라고 평했다. 

자가 분열하는 언어 장치 
이번 시집에는 경이로운 표현이나 의미심장한 함의 등 독자가 시를 읽을 때 기대하는 요소들을 찾아보기는 힘들다. 시인도 “이 시에는 여러분이 기대하는 것은 없다”(#71)고 말했다. 시인은 “격언도 떼어주고 깨달음도 베어주고 예찬도 돌려주고 찬양도 싸주고 은유도 나눠주고 제목도 버”(#46)렸다. “어떤 전위적인 조각으로도 비석의 상투를 넘어서지 못”(#19)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까지 발표된 시는 시가 아니”(#2)라고 했는지도 모른다. 

나무 이름을 몰라 부끄러워하는 
시인의 붉어진 얼굴 
써도 써도 벗을 수 없는 언어라는 운명 
내가 쓰고 싶은 시는 낭독할 수 없는 시 
한순간도 가만있지 않는 문장이 순서를 바꿔 뒤척이는 시 
시가 시를 낳는 시 
자가 분열을 하는 시 
읽는 순간 불타버리는 시 
시인 것이 없는 시 
시 아닌 시 
세상의 모든 시 
-#3 

“써도 써도 벗을 수 없는 언어라는 운명” 앞에서 이제 시인이 쓰고 싶은 시는 “낭독할 수 없는 시”다. 낭독할 수 없는 시는 한순간도 가만있지 않고 뒤척이는 시다. 이 세계 역시 한순간도 가만있지 않고 움직이기 때문이다. “나무는 나무다 흔들리거나 흔들리지 않아도 바람은 분다”(#212)라는 말은, 정지된 것처럼 보이는 순간에도 세계는 움직이고 있다는 뜻으로 새겨도 좋을 것이다. 세계는 계속 움직이며 순간의 끝을 지연시킨다. (아스팔트 도로 패인 곳에 물이 고여 있다 하늘 한 자락이 거기에 담긴다 자동차 바퀴가 튀긴 물방울 속에 하늘이 흩어진다 생성은 지속된다 -#104) 시인이 바라는 문장은, 시는 그런 것이다. 아니, 원래 문장은, 시는 그렇게 뒤척이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 뒤척임이 다시 시를 낳는다. 자가 분열을 한다. 이런 시는 읽는 순간 불타버리는 것이 맞다. 움직이는 것을 어떻게 읽을 수 있겠는가. 움직이는 것에 어떻게 격언과 깨달음을 담고 예찬과 찬양을 보내고 은유하고 제목을 붙일 수 있겠는가. 그런 행위들은 움직임을 인위적으로 정지시킨 뒤에 할 수 있는 행위들이다. 끝난 것처럼 보이지만 끝은 끝나지 않는다. 머리끝에서 시작해 발끝으로 이어지는 고양이의 끝과 화자의 손끝이 만나듯이(#121) 끝은 끝나지 않는다. 끝과 끝이 계속 이어져 끝이 끝나지 않고 움직인다. 끝이 끝을 낳는 시, 스스로 움직이는 시가 「끝」이다. 

이것은 끝 이곳은 끝 태어날 때 이미 끝 세상은 그날 이후 끝 끝이 계속되는 끝 나는 끝 너도 끝 시작도 끝 끝없이 끝나지 않는 끝 
- #297 

우주의 모습을 보여주는 타투 
끝이 끝나지 않으니 “끝은 사라지고 / 글만 남는다”(#298)는 마지막 조각의 종언은 자연스럽다. 물론 그 글은 끝이 사라졌으므로 끝이 없는 글이다. 이번 시집에는 끝나지 않는 끝의 모습을 보여주는 구절이 몇 개 있다. “여자의 몸엔 상처가 똬리를 틀듯 감겨 있다”(#141)나 “시계 반대 방향으로 돌아 들어 배수구로 사라지는 비누 거품 보글보글 섞인 물 내 몸을 흘러내린 부슬부슬한 시간들이 빙글빙글 사라지고 있다 (#231)” 같은 것들이 그것이다. “똬리를 튼 상처”나 “시계 반대 방향으로 돌아 들어 배수구로 사라지는 비누 거품”은 나선의 우주를 연상시킨다. 우주는 계속 팽창한다. 끝이 계속 멀어지므로 끝이 없다. 

돌아누운 여자의 몸에서 나와 가장 가까운 건 엉덩이 가장 먼 것은 오른손 끝 잠시 뒤척이자 손끝보다 더 멀어진 왼발 끝 멀어지는 손끝 발끝 엇갈리는 손끝 발끝 오른손 끝과 왼발 끝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멀어지고 오른발 끝과 왼손 끝이 앞뒤로 달아난다 잠든 여자의 몸이 내게서 자꾸 달아나는 것은 단지 자세가 식상하기 때문 어둠 속에서도 자꾸 끝을 바꾼다 다시 돌아누운 여자는 손끝과 발끝을 내게 내민다 - #160 

#160은 돌아누워 잠든 여자가 뒤척이며 화자에게서 가장 먼 신체의 끝을 계속 바꾸는 모습을 보여준다. 화자는 여자가 끝을 바꾸며 자꾸 달아나는 것은 단지 자세가 식상하기 때문이라고 했지만 그것은 멀어지는 게 세계의 본질이라는 말과 크게 다르지 않다. 우주는 계속 팽창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둠 속에서도 자꾸 끝을 바꾼다’는 표현이 방증이다. 우주는 어둡지 않은가. 다시 돌아누운 여자가 화자에게 손끝과 발끝을 내민다. 화자에게 다가온 것은 멀어지는 끝이다. 끝나지 않는 끝이다. 그러니 그 끝을 향한 사랑이 아름답지만 휘발성을 지니는 것은 당연하다. 

그녀의 몸에 휘발유를 붓고 내려다보는 물기 가득한 눈빛에 잠긴 아스팔트에 흘러내리는 휘발유는 온도가 그리운 차가운 액체 - #34 

이 시집에 담긴 298개의 언어 풍경들에는 제목도 없이 #1, #2, #3가 같이 시나리오의 신 넘버를 연상시키는 번호만 매겨져 있다. 각각의 풍경들은 서로 연관된 것들도 있지만 대부분 아무 관련이 없다. “관계도 없이 이유가 되고 이유도 없이 관계가”(#135) 되는 모습이다. 무수히 많은 별들이 모여 성단을 이루고 있지만 역학적인 관계를 제외하면 각각의 삶을 살아가는 별들의 모습과 비슷하다. 빛은 광년의 거리를 달려와 우리 눈에 보인다. 빛의 실체인 별은 지금 이 순간에는 없을 수도 있는 것이다. 즉, 별빛은 별과 우리 사이에 잠시 나타난 홀로그램인 셈이다. 거리와 시간과 움직임의 문제다. 만물은 유동하기에 저기 별까지의 거리가 무한에 가까워지는 유한이라면, 여기 사람(사물)과의 거리는 유한으로 보이는 무한이다. 그렇다면 저 별빛뿐만 아니라 우리 주변에 있는 사람과 사물도 허상, 홀로그램일 수 있다. 그것이 최규승 시인이 『끝』을 통해 펼쳐 보인 세계이다. 시인은 언어의 모습이 삶의 모습이고 삶의 모습이 우주의 모습이라는 걸 인식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그 길을 따르는 것이 시인의 진정성이지 않고 무엇이겠는가. 
#1부터 #298까지 ‘끝’이라는 제목으로 묶인 시의 조각들을 한 조각 한 조각 따라가다 보면 우주의 소리가 들리는 듯한 느낌을 받는 순간이 있다. 하지만 시인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만 지금 여기의 모습을 언어의 풍경으로 보여주었을 뿐이다. 시인의 바람대로 시가 자가 분열하여 스스로 우주로 확장한 것이다. 

책속으로 추가 
#124 
하늘을 스캔한 강물 위에 과일을 실은 배 두 척이 하루의 끝자락에 떠 있다 배와 배가 맞닿은 곳에서 하늘이 무너지기 시작한다 파장으로 지워지는 하늘과 하늘 사이에 물이 든다 배 위의 열대 과일이 흔들린다 선수와 선미가 똑같은 배 앞으로도 나가지 못하고 뒤로도 물러나지 못한다 강물이 배 끝을 잡고 하늘이 뱃머리를 막는다 끝과 시작은 배의 몸통을 가운데 두고 팽팽하다 언제나 시작 영원한 끝 

#131 
강가의 나무 바람 없어도 흔들리는 나뭇잎들 나뭇잎에 출렁이는 햇빛 일렁이는 물결 빛은 바람의 끝을 타고 와 나무를 태운다 밝아질수록 어두워지는 나무 이름을 잃고 어두워진다 물결 위로 떨어지는 어둠 일렁이는 하루 다시 빛이 스며든다 불나무는 검고 사위는 탄다 강가의 나무 바람을 흔들어 깨운다 바람이 몰아치고 나무는 잠든다 

#142 
여자는 화분을 들고 있다 화분에는 손이 자란다 굵고 튼튼한 손 흙속의 양분을 죽죽 빨아들이는 핏줄 여자의 턱 밑까지 자란 손 천천히 오무렸다 폈다를 반복한다 여자는 화분을 아래로 한껏 내린다 여자의 턱 끝에 손이 닿는다 여자의 턱에 수염이 자란다 손이 수염을 붙든다 당긴다 비명을 지르며 여자는 화분을 놓친다 여자의 수염을 더욱 꼭 붙든 손 화분이 허공에서 흔들린다 여자의 비명이 점점 자란다 

#157 
네 입술에 앉고 싶어 뻥 튀겨진 네 입술 가시 돋은 네 입술 바늘 꽂힌 네 입술 끝이 살짝 올라간 네 입술 약간 벌어진 네 입술 덧니가 살짝 보이는 네 입술 침 흘리는 네 입술 온통 붉은 네 입술 피 흘리는 네 입술 배고픈 네 입술 흔들리는 네 입술 구석으로 몰린 네 입술 터질 것 같은 네 입술 당당한 네 입술 입술뿐인 네 입술 엉덩이에서 피가 나도 좋아 앉고 싶은 네 입술 

#170 
맑은 여름밤 야외극장의 영화가 끝나간다 하나둘 벌써 자리를 뜬 관객들 뜨는 관객들 빈자리가 늘어난다 영화는 계속 상영되고 있다 끝나야 끝나는 영화를 흐지부지 흩어지는 관객들이 보고 있다 몇몇의 끝과 하나둘 사라지는 흐지부지 여름밤은 깊어가고 영화는 끝나가고 관객은 흐지부지 아직 남았다 

#180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나 창밖에 비 온다 바람 분다 바람이 시작인가 창이 시작인가 밖이 시작인가 비가 시작인가 문득 창이 있고 밖이 있고 바람 불고 비 온다 내가 한쪽 눈을 떴을 때 이미 시작된 지 오래였다 창이 있고 밖이 있고 바람 불고 비 온다 창 안에 내가 있고 안이 시작인지 나는 모른다 알 수 없으므로 내가 시작이다 

#186 
이제 그만 집에 가자 거리는 
아름답지만 죽음이 
머물 수 없네 삶은 
흔들리므로 거리의 것 이제 집에 
가야지 천천히 떠올라라 천천히 
기포도 하나둘 천천히 처음에 그랬듯이 
다시 사람의 집에 시집을 안치해야 한다 
젖은 시집 퉁퉁 불은 말들 
천천히 아름다움이 마르는 동안에도 
떠오른다 죽음조차 죽음으로 

#232 
샤워를 하다 느닷없이 잊힌 사람이 떠올랐다 흘러내리는 물을 따라 내려다본다 시계 반대 방향으로 돌아 들어 배수구로 사라지는 비누 거품 보글보글 섞인 물 내 몸을 흘러내린 부슬부슬한 시간들이 빙글빙글 사라지고 있다 의도된 의태어가 거슬리는 지금 시간은 밤 11시 방금 그친 비는 아직 창에 흘러내리는 중 산책하기에 좋은 밤 내딛는 발걸음이 빗물로 코팅된 땅바닥에 미끄러지듯 흘러내린다 생각이 미끄러지는 기분 좋은 밤 

#271 
나와 세상은 여전히 끝없는 끝 시도 끝없는 끝 별과 별 사이 어둠이 빛난다 

#287 
모른다 그때나 지금이나 별빛은 얼마나 허망한가 모든 사람을 속일 수 있는 반짝이는 저것 최면은 눈으로 들어올 때 빠르다 죽음에 몸 적셔본 사람만이 외로움의 수위를 안다 어떤 고통도 죽음에 이르는 외로움만큼 깊지 않다 하늘 때문에 죽은 목숨이 하늘로 위안을 받는다 별빛 떨어지는 일 말고는 다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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