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 바로가기
검색 바로가기
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중앙북스 사이트맵 바로가기

문예중앙 2017년 여름호 특집은 ‘문학의 여성 내러티브’입니다. 최근 ‘김지영 현상’에 맞춰 문학 전반에 등장하는 여성 인물과 삶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지난 15년 동안 퓰리처상의 경우, 여성의 시선으로 여성에 대해 그린 작품은 한 번도 수상하지 못했”고, 그 이유에 대해 “여성에 대한 이야기는 불쾌하거나 지루하다는 인식”(강영숙)이 있다는 사실에 한 번 더 놀랐습니다. 이번 특집에는 현재 활발히 작품 활동을 하고 있는 여성 작가 강영숙, 윤이형, 아밀, 김은성 씨가 함께해주었습니다. 인터뷰에서는 김성중 작가가 최근 『사회학적 파상력』을 펴낸 김홍중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를 만났습니다. “큰 꿈들이 사라지거나 덧없이 느껴지는” 파상의 현실에서 “작은 꿈들의 생태계를 어떻게 만들어갈” 것인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보이지 않는 미래’를 걱정하는 청년 세대에게 일독을 권합니다. 그리고 창작란에는 소설에 김유진, 최진영, 김효나, 허희정, 이정연 작가가, 시에 강정, 김은주, 박세미, 김지윤, 강혜빈, 장수양 시인이 귀한 글을 보내주었습니다.  

▶ 특집 : 문학의 여성 내러티브
강영숙 _구라키 마리에--오에 겐자부로 소설 『인생의 친척』의 주인공의 경우
윤이형 _여성에 대해 쓰기: 너무 많은 질문들과 약간의 대답
아밀 _안티고네, 제인, 그리고 영혜가 인간이 되는 법
김은성 _나의 이야기

▶ 인터뷰
김홍중 + 김성중 _파상 이후 세계에 밀려오는 작은 꿈의 생태계

▶ 소설
김유진 _나팔
최진영 _후일담
김효나_남자여자--직전에서
허희정_Stained
이정연_앞자리에 앉은 사람

▶ 시 
강정_그림자의 표본 외 4편
김은주_아보카도 키우기 외 4편 
박세미_will 외 4편 
김지윤_짙은 사과 외 4편 
강혜빈_필름 속에 빛이 흐르게 두는 건 누구의 짓일까 외 4편 
장수양_미소 외 4편 

▶ 리뷰
박민정_더없이 투명한 가면 쓰기: 지하련 「제향초」 
정영효_술 그리고 어른들이 만든 질서: 최인호 「술꾼」
원성은_사람을 사랑해본 일이 없는 녀석들이 어떻게 하늘의 별을 볼 수 있느냐 말이야: 이청준 「별을 보여드립니다」
이민진_Pause to pose: 오상원 「유예」 

■ 2017년 여름호를 펴내며

최근 ‘김지영’이 화제입니다. 국회의원들을 비롯해 대통령에게도 ‘김지영의 삶’이 전해져 회자되고, 10만 명이 넘는 독자들이 저 이름이 박힌 책을 찾아 베스트셀러에 올랐다고 합니다. 다름 아닌 소설 『82년생 김지영』 얘기입니다. 이제 ‘김지영’은, 그 누구에게도 남의 일이라고만 여길 수 없는 사람이기에, 그저 흔한 고유 명사로 남을 수 없을 듯합니다. 그녀는 조남주 작가가 만들어낸 가공인물이 아니라 남성 중심의 한국 사회가 빚어낸 기형 서사의 주인공이기 때문입니다.
흔히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현실이 벌어진다고 합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에는 자주 소설보다 더 극적인 서사들이 일어납니다. 스펙터클한 재난 서사에서부터 사회적 소수자들의 불행한 일상 서사에 이르기까지. 이들 서사에는 그것을 구축하는 근원 서사가 있습니다. 이를테면 자본은 자본의 서사를 만들어냅니다. 익히 알다시피, 1997년 IMF 이후 공고화된 신자유주의는 우리의 삶 구석구석에 자본의 서사를 심어놓았고, 그것은 사람들의 의식과 무의식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적자생존, 무한 경쟁의 시대에 사람들의 “가장 절박한 관심은 ‘진정한 삶’이 아니라 ‘목숨 그 자체’ 즉 ‘생존’의 문제”이고, “생존자는 더 이상 자신의 생존을 부끄러워하지 않”으며 “그것은 오히려 모방되고, 칭송되고, 존경받아야 하는 업적으로 과시”합니다. 이것은 다양한 삶의 가치를 위협하는, 자본 서사의 공고한 프레임으로 작용합니다. 그렇게 우리 시대의 서사들은 우리의 삶에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김지영 서사’에도 그 밑바탕에는 한국 사회의 남성 중심 서사가 있습니다. 이 소설 속에서, 셋째가 또 딸이라는 “재수 없는 소리”하지 말라는 아버지의 말에 낙태를 하는 어머니나, 남학생 짝꿍이 괴롭히는 것은 김지영을 좋아해서 그런 거라고 말하는 선생님이나, 첫 손님으로 여자를 태우지 않는다고 말하는 할아버지 택시 기사나, 모두 여성의 존재를 남성과 같은 ‘인간’으로서 바라보지 못합니다. 마치 전염이라도 된 듯 거의 모든 인물들이 남성 중심의 사고에 ‘여성’을 가두어버립니다. 그러한 차별과 폭력 속에서 김지영이 결국 발견하는 것은 본래 자신의 모습이 아니라 남성 사회에서의 ‘김치녀’ 또는 ‘맘충’이었습니다.
이러한 남성 중심의 서사는 기존의 한국 소설들에도 존재합니다. (이 문제 제기는 이전에도 여러 여성학자와 문학평론가들을 통해 있었겠지만) 최근 ‘여성혐오’ 이슈와 함께 여러 유명 작가의 작품들이 도마 위에 오르내리고 있습니다. 지난 호 문예중앙에서도, 젊은 작가들이 〈리뷰〉 지면을 통해 김승옥, 김동인, 손창섭의 소설에서 남성 중심 서사의 도구로 사용되는 여성의 존재를 지적한 바 있습니다. 그런 발언들이 그 작품들의 가치를 절대적으로 평가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다만, 문학 작품을 바라보는 또 다른 시선으로서, 두 가지의 인간 중 어느 하나가 마땅히 주장할 수 있는 형평성에 대한 의심으로서, 가치 있는 발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제 ‘다른’ 서사가 필요한 시점입니다. 우리 사회가 겹겹이 쌓아올린 남성 중심의 서사의 벽에 금을 내어야 합니다. 그것이 너무나 견고하고 촘촘하여 틈이 없더라도 두드려야 합니다. 작가의 상상력으로 또 다른 서사를 만들어나갈 때, 그것은 우리의 삶에 서서히 스며들 것이라 믿습니다.